[분수대] PPL
PPL(Product PLacement)은 원래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소품을 배치하는 업무를 뜻하는 용어였다. 오늘날엔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상품이나 브랜드를 노출하는 ‘간접광고’와 동의어처럼 쓰인다. PPL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쥘 베른이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1873년)를 쓸 때 교통·선박회사 등이 작품에 회사명을 언급해달라고 로비했다고 한다. 실제로 작가가 돈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마케팅 성공 사례로 꼽히는 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 T’(1982년)에 나온 M&M 초콜릿 사탕이다. 개봉 3개월 만에 매출이 66% 뛰면서 PPL 기법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대중문화 성장과 함께 덩치를 키워왔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불법이었던 PPL은 2009년 비로소 합법화됐다. 2016년엔 외주제작사의 간접광고 판매를 허용했다. 부족한 제작비를 보전하도록 길을 터줬다. 방송법시행령에서는 ‘간접광고로 인하여 시청자의 시청 흐름이 방해되지 아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에서 PPL이 시청 흐름을 깨는 건 ‘국룰(국민 룰)’이 된 듯하다. 최근 tvN 드라마 ‘지리산(사진)’에선 산속에서 활동하는 주인공들이 특정 브랜드 샌드위치를 먹는 PPL이 논란이 됐다. 지리산에서 가장 가까운 해당 브랜드 지점도 수십㎞ 떨어져 있어 현실성이 떨어져서다. 넷플릭스 히트작 ‘킹덤’의 김은희 작가와 톱스타 전지현 등이 뭉쳐 만든 제작비 320억원 규모 대작의 현실이다. 김은희 작가는 한국의 거의 모든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 안마의자 PPL을 어떻게 대본에 녹일지 고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킹덤’을 만들 땐 하지 않았을 고민이다. 전 세계 2억여명의 구독료로 운영되는 넷플릭스는 광고가 없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킹덤’ 같은 역사 좀비물은 PPL을 넣을 여지가 없다. 한국 방송사 납품용이었다면 아예 창작조차 불가능했을 터다. 시청자들은 점점 TV 앞에서 방송 시간을 기다리며 광고를 보는 대신 온라인으로 다시 보기를 택한다. 광고 방해 없이 드라마를 몰아 보는 경험에 익숙해질수록 직접이든 간접이든 광고가 설 자리는 줄어든다.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K콘텐트 붐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방송의 위기를 보여준다. 이경희 / 한국 이노베이션랩장분수대 간접광고 판매 한국 드라마 한국 방송사